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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존중의 공간에 대해
이병훈중앙대 명예교수
“10000명 이상을 수용하는 건물이면서도 환기 장치가 하나도 없으며 더구나 휴식시간 오후 1시부터 2시까지에도 햇빛을 받을 장소가 없음.”
전태일 열사가 1970년 9월 즈음 삼동회 동료들과 함께 평화시장 노동실태조사를 실시하여 파악한 당시 일터 공간의 실상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조명과 환기 장치 없는 공간에서 “(하루 15-16시간의 작업 하느라) 평균 20세의 숙련 여공들은 대부분이 햇빛을 보지 못한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 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라고 그는 대통령께 탄원의 편지를 보낸다. 또한, 그는 언론에 열악한 평화시장 노동실태를 고발하였으며, 노동청에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조건개선 진정서'를 제출키도 하였다. 정부 당국의 무성의한 태도와 거듭된 약속위반에 좌절하며 분노한 전태일 열사 1970년 11월 13일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근로기준법의 화형식을 열어 끝내 자신을 불 사르며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 등의 절박한 외침을 남기고 산화하였다. 그의 죽음은 평화시장의 청계피복노동조합을 비롯하여 많은 사업장의 노조 결성으로 이어져 민주 노동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1970-80년대 노동자투쟁에는 조명과 환풍 등의 작업환경을 개선해달라는 요구가 필수 항목의 하나로 제시되곤 하였다. 1987년 민주화와 연이어 터진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노동조합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작업환경의 개선이 폭넓게 이뤄졌다.
하지만, 1990년대, 특히 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확연하게 고착화되기 시작하여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교하여 중소기업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복지는 갈수록 그 격차가 벌어졌을 뿐 아니라 그들의 작업환경 역시 그리 개선되지 못한 채 전태일 열사의 시절과 별 차이 없는 비인간적인 일터 환경이 주어지고 있다. 주변부 노동시장에 속하는 노동자들의 취약한 일터 환경은 안전사고와 직업병의 위험노동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영세사업체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하여 협소한 업무공간에 갇힌 용역직 아파트경비원들, 쾌쾌한 지하 휴게실에 쉴 수밖에 없는 청소노동자, 식사할 자리를 찾을 수 없는 병원 간병 노동자, 쉴 의자 없이 업무시간 내내 서서 일해야 하는 판매 매장의 서비스 노동자, 그리고 용변시설 없이 일해야 하는 건설현장의 일용 노동자 등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기업들의 인력활용 방식 변화와 디지털기술혁신 등에 따라 특수형태고용종사자(일명 특고),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와 같이 ‘사장님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취업자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종속적 사업자들은 길거리 또는 자신의 집을 작업공간 삼아 일하고 있어 일터환경 취약성의 또다른 문제현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는 노동자들은 그들의 일터에서 하루하루 적잖은 시간을 생활하고 있다. 그런 만큼, 일하는 사람들에게 노동 공간의 조건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세계적으로 장시간 노동국가로 손꼽히며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제대로 지켜질 수 없는 우리나라의 직장현실에서 업무활동의 공간적 환경은 더욱 중시될 필요 있다. 그런데, 최저 노동조건을 보장해주는 근로기준법을 살펴보면 노동공간의 일터 환경에 대한 법적 기준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그동안 노동조건 개선을 둘러싼 노사간의 단체교섭이나 노사정간의 사회적 대화에 있어 주로 고용-임금-노동시간을 둘러싼 높은 관심과 뜨거운 각축이 벌어지는 것과 비교하여 노동공간의 작업환경 개선은 논란의 중요 이슈로 부각되어 주목 받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는 일터 공간이 일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활/활동조건이자 그들의 노동인권을 보장하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노동공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그리 높지 않은 문제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2019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양질 노동의 미래를 위한 인간 중심의 정책의제 (A human-centred agenda needed for a decent future of work)」 10개를 발표하였다. 첫 번째의 정책의제로 노동기본권·적정한 생활임금·노동시간 단축과 더불어,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safe & healthy workplaces)에 대한 보편적 노동보장(universal labour guarantee)을 제시하고 있다. 디지털혁명과 기후위기 그리고 인구구조 대변동 등으로 촉발되는 대전환의 시대적 상황에 대응하여 ILO가 안전과 건강의 일터공간을 인간 중심의 보편적 노동규범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로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 있다. 국정과제의 하나로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 사회 실현’를, 윤석열 정부는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 만들기’를 공통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가치)가 제대로 존중되기 위해서는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환경을 보장할 수 있는 촤소한의 노동공간 기준이 시급하게 마련되어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공장·사무실·매장·자영업소 뿐 아니라 길거리 또는 집안을 일터로 삼아 노동하는 모든 사람들의 안전과 건강 그리고 인간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는 생활/활동의 공간적 최소기준과 기본요건이 ‘일하는 사람 보호를 위한 기본법’의 중요 항목으로 마땅히 포함되어 명시되어야 할 것이다.
(사)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가 수행하고 있는 「1인 작업장 최저노동공간 탐색」의 프로젝트가 한국 사회에서 소홀히 해온 ‘노동공간의 최소기준’을 공론화하고 제도화의 물꼬를 열어가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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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 노동공간의 관찰과 문제의 발견
문정석로컬프로젝트건축사사무소 소장동국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
일반적으로 민간영역에서 공급하는 공간에서 면적과 체적은 비용에 의해 정교하게 계산되고 그 안에서 행동은 측정 가능하도록 기계적으로 개량된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최저 노동공간은 공간자원의 배분에 집중하는 현대적 공간계획에 의해 의도적으로 축소되거나 공간 프로그램(특정 공간의 역할을 수행하기위한 공간의 사용방법과 절차)은 잘게 분절된 채 그 중 몇 가지 절차가 감히 생략되기도 한다. 이 때, 살아 숨쉬는 사람의 유기성은 부정되고 생략된 행위의 내용과 절약된 공간은 다시 비용으로 환산되는데, 가장 잘 알려진 예는 백화점 서비스 노동자들의 직원용 화장실 문제일 것이다. 단위면적당 임대료가 가장 높아 최소 부피로 최대 교환가치를 가진 상품을 팔아야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백화점 1층 매장에서 화장품 판매원을 위한 직원용 화장실의 설치여부는 단위면적당 매출 앞에 당연한 듯 축소되고 은폐된다. 이런 사례에서 최소 노동공간의 관찰과 문제의 발견은 노동자가 좌표지어진 해당 공간과 더불어, 그 공간에서 건강하게 노동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공간의 앞 뒤 맥락을 연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반대로 공공영역에서 공급하는 최저 노동공간의 전형적 문제는 공간을 조성하는 주체와 대중의 무관심, 해당 노동의 공공적 가치에 대한 이해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공공영역의 공간은 그래서 유달리 공간의 과잉과 결핍이 동시에 발견되곤 한다. 우리가 아는 많은 공공기관의 공간에서 용도가 모호함에도 과시적으로 넓은 로비/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색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공간,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서비스 노동자들의 쉼터가 혼란스럽게 공존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테다. 이상적일지도 모르겠지만 동일노동 - 동일임금 원칙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가 유사한 노동에 대해 각기 다른 계급을 부여하고 노동공간에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바라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한정된 공간 안에 신체가 결합되는 시간, 그리고 노동방식의 변화가능성에 대한 관찰도 최저 노동공간에 대한 확장된 이해를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좁은 공간임에도 결합된 노동의 시간이 짧아 그 공간의 물리적 볼륨이 노동자에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공간이 있는 반면, 넓은 공간임에도 한 좌표에 결박된 시간이 길어서 면적과 공간환경의 문제보다 노동방식과 그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더 중요한 최저 노동공간이 존재한다. 인간적인 노동에 기초한 특정 노동방식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고려없이 자칫 현재의 방식을 정당화한 채 최저 노동공간의 적정성을 고민하는 우를 피해야 할 것이다. 최근 뉴스에 종종 소개되는, 낮은 높이의 택배 트럭에서 장시간 노동을 수행하다 허리 디스크 등 심각한 질병을 얻은 택배 노동자의 문제는 단지 해당 노동공간의 적정크기 확보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물론 일반 택배트럭이 접근하지 못하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낮은 층고가 1차적 원인이지만, 공동의 택배보관공간을 운영하는 대신 반드시 내 집 앞까지 주문한 물건의 배송을 요구하면서 벌어지는 무리한 노동의 강요, 과잉 서비스에 대한 집착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닌지 같이 살펴봐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간의 Z축을 바라보는 관점의 환기이다. X축과 Y축의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공간의 넓이가 간격의 밀도를 보여주는 지표라면, 여기에 Z축이 결합된 공간의 위상적 높이(Elevation)와 부피는 공간의 환경적 이슈에 대한 지표이다. 반지하에서 밤낮없이 돌아가는 의류노동자들의 공간부터 한뼘 고공의 크레인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까지, 그리고 Z축 공간의 협소함으로 환기가 되지 않아 팬데믹에 특히 취약했던 최저 노동공간의 문제도 다루어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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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작업장 최저 노동공간’에 대하여
이종석애드건축사무소 대표
우리는 지금 매우 고도화된 세상에서 편의성을 누리면서 살고 있다. 핸드폰이 스마트폰으로 변하면서 훨씬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 음식은 물론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고 배달서비스를 받는다. 구태여 은행까지 가서 긴 시간을 기다릴 필요도 없고 웬만한 민원서비스 또한 전화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이 가능 것은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는 IT 기술과 빅데이터 및 AI를 활용한 산업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세상의 변화가 우선은 개인에게 편의성을 제공해주지만 좋은 일 만은 아니다. 그동안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던 우리의 일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함께 걱정해야 한다. 가까운 식당에만 가 봐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종업원이 주문받고 서빙을 했었지만, 이제는 문 앞 키오스크에서 주문과 결재를 해야 하고 종업원 대신 로봇이 음식을 가져다준다.
세상은 또 다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출산율이 급속히 줄고 고령화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1인가구의 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전체 가구수의 1/3을 넘어섰다고 하니 그동안의 전통적인 사회구조가 더욱 빠르게 변화할 것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런 가운데 MZ세대를 중심으로 ‘파이어(FIRE)' 바람이 불고 있다. 상사의 눈치를 보며 억매인 조직생활이 답답했던 그들은 회사를 떠나 자유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또 다른 직장이나 일자리 대신에 자신의 능력과 재능, 심지어 취미생활에 가까운 1인 기업을 창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이들을 지원해주는 공유오피스는 물론 세무 및 법무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업체의 광고를 쉽게 접할 수 있다.
1인 기업의 운영이 가능한 것은 앞서 설명한 고도화된 IT환경에서 남의 도움 없이 혼자 작업이 가능한 것은 각종 장비와 프로그램들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늘어나고 있는 1인 작업장의 노동자는 기존 노동자의 작업환경과 같은 열악한 늪에 빠지기 쉽다. 대기업 혹은 중소기업과 같이 다수의 노동력과 조직력을 중요시 하는 작업장의 경우 최소한의 복지시스템에서 보호를 받기도 하지만, 1인 작업장의 노동자는 아직 사회적 보호 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그들의 노동환경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1인 사업자가 창의적이고 활발한 경제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지자체가 나서서 이들에게 안정적이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연구와 지원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 1인 사업자의 업무적 특성에 맞는 단위공간에 대한 기준과 그들이 필요로 하는 설비, 부속시설에 대한 지원은 물론 접객 및 회의를 위한 공간, 식사 및 휴식 등 일련의 작업자 중심의 환경조성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 또한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면 정부의 청사 또는 지방 청사를 건설할 경우 사전에 직원의 업무와 직급에 따른 단위 공간기준을 적용하고, 청사의 업무기능을 충족시킬 수 있는 부속시설에 대한 기준에 따라야 한다. 이는 쾌적한 공간을 조성하여 업무효율을 증진하고자하는 목적보다는 호화청사 건립과 같은 과설계를 방지하여 예산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대부분의 지방청사는 준공한지 얼마 되지 않아 비좁거나 부족한 공간으로 인해 인근에 임대청사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직원의 단위공간이 아직도 1970년대 만들어진 표준설계면적기준에 머물러 시대적 변화에 맞는 적정면적기준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인 사업자의 적정면적은 조직중심의 기업형 직원의 업무면적과는 다르게 인식될 필요가 있다. 1인 사업자는 축소한 사업체로 구성된 개인 기업이기 때문에 그가 지녀야 할 물품과 문서, 장비 등을 고려하면 일반회사의 직원이 필요로 하는 점유면적이 보다 훨씬 넓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기준의 설정과 공간제공을 위한 노력은 향후 우리사회가 수용해야 할 과제이다.
아래의 사례는 비록 사무형 업무중심의 노동자에게 제공되는 공간연구 사례이지만, 비슷한 유형의 1인 작업장에서 필요한 공간규모를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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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이소진연세대 사회학과 박사
노동을 생각할 떄, 우리는 아주 자주 ‘쉼의 공간’의 중요성을 잊어버린다. 노동자가 생산성을 담지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쉼’의 시간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쉼’의 공간은 ‘집’으로 표상되는데, 우리는 나의 집에서 혹은 나의 방에서 내일의 피로를 해소한다. 그러나 돌봄노동의 성별분업이 자리한 사회에서 이 ‘쉼의 공간’은 손쉽게 성별화 된다. 쉼을 위해 필요한 노동은 여성의 손으로 이루어진다. 비단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머니를 돕는 수많은 딸들에게도 집은 쉼의 공간이 되지 못한다. 많은 여성들은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한다.
최근 청년여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나는 우리가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여성들의 방은 항상 열려있었고, 닫혀있다 하더라도 언제든 열어도 되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현관문 옆 방이 K-장녀의 방이다’라는 트윗에 수많은 여성들이 열광했던 까닭은 가족 내에서 이들이 수행하고 있는 돌봄노동을 짐작하게 한다. 아버지의 부름에, 어머니의 부름에 응답해야 한다는, ‘딸’이라는 지위에 수반되는 의무들과 그에 따른 책임감은 여성들이 스스로 자기만의 방을 포기하게 만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방’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명목상의 공간은 자기만의 방이 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임금노동을 수행하고 있지 않은,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청년여성들은 더욱더 취약한 상황에 처해 있다. 노동을 하지 않는 여성들의 시간은 ‘비어있는 시간’으로 인식되어 아주 쉽게 가족의 시간으로 치환된다. 물론, 이 때 돌봄노동이 가족구성원들 사이에서 적절히 분담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이 돌봄노동을 수행해야 한다는,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돌봄노동에 적합하다는 인식은 돌봄노동의 분업을 가로막는다. 특히 조부모의 병환 앞에서 일부 청년여성들은 24시간 지속되는 무급간병노동에 동원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집이 일터로 변하는 순간이다.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가족 돌봄 앞에서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남자형제들은 물론, ‘남성이라는 이유로’ 돌봄노동에서 제외된다.
그래서 정책을 입안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상당수의 여성노동자들은 재택근무를 선호하지 않는다. 특히 함께 거주하는 가족이 있는 경우, 여성들은 일터와 가정의 분리를 희망한다. 집에서 임금노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지만, 이들에게는 그러한 공간이 없다. ‘내 방’은 다른 가족구성원에 의해 쉬이 침범되며 방해를 받는다. 자기만의 방을 사수하기 위해 반복해야 하는 수많은 부탁, 말들, 그에 뒤따라오는 답답함, 죄책감, 분노와 피로는 이들의 일터가 사실상 ‘자기만의 방’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일터야말로, 여성들에게는 누구에게도 침범되지 않는 ‘자기만의 방’이다.
그러나 주거독립을 이룬다해서 여성들에게 ‘자기만의 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자기만의 방’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안전해야 한다. 안전한 공간을 얻기 위한 비용은 비싸다. 저렴한 주거지는 위험할 확률이 높다. 게다가 매일 같이 발생하는 성범죄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혼자살고 있는 많은 여성들의 집은 공간의 조건과 관계없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그래서 많은 청년여성들은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자신의 경제적 능력과 위험 사이에서 그 효용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이사를 반복한다. 위험한 공간은 ‘자기만의 방’이 될 수 없다.
이처럼 공간은 공간이 놓인 사회적 맥락에 따라 성별화 된다. 공간이 주는 물리적 특성으로 인해 우리는 공간을 맥락적으로 해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성별이라는 변수는 우리가 공간에 대한 상을 그려나갈 때,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돌봄노동이 여전히 분배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쉼의 공간은 성별화되어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 나는 우리가 상상하는 공간이 여성들에게 안전하고, 침해받지 않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공간이야말로, 성평등한 공간일 것이고 모두에게 이로운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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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공간'의 개념과 최저기준 마련에 대하여
김지수연세대학교 미디어문화연구 박사수료
‘노동공간’ 개념 설정의 문제
우선 ‘노동공간’이라는 개념을 통해 공간 안에서 노동과 연관되어 벌어지는 다양한 정치적 동학을 포착하고, 노동하는 자의 일상과 공간이 맺는 관계에 집중하고자 하는 연구팀의 취지에 동의하면서 논문 작성과정에서 겪었던 문제들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학술 영역에서 ‘노동공간’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의 문제가 관건이었는데, 놀라웠던 점은 기존의 공간연구나 문화연구 등 국내의 유관 학술연구분야에서 ‘노동공간’을 특정한 방식으로 정의하거나 개념화하는 선행연구가 거의 부재했다는 점이었다. 많은 연구에서 노동공간이라는 개념은 ‘노동자의 노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통념적인 이해 차원에서 논의되면서 그 정의 자체는 생략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적지 않은 연구가 노동공간보다는 ‘작업장’, ‘노동환경’과 같이 아예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용어로 서술되기도 했다. 필자가 수행한 연구의 경우에는 공장이 모여있는 지역(공단)이 실제로 이 도시에서 ‘노동’하면 떠오르는 구역으로 상징화되고 있음에도, 주거지역과 비교해서 사회적 분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했기 때문에 ‘노동공간’이라는 개념을 이용했다. 즉 이 연구에서 다루는 ‘노동공간’은 사측의 통제가 벌어지고 노동자가 일상을 살아가는 ‘개별 작업장/공장’을 포함하면서도, 도시계획의 용도지역제에 의해 명확히 분리되어 있고 그로 인해 물리적/상징적 의미화가 발생하는 좀더 집단적인 규모의 공간(=공단)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그래서 ‘작업장’이나 ‘공업지역’ 대신 노동공간이라는 용어를 쓰고 스스로 정의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공간이라는 개념을 연구자가 자의적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의 불필요한 오해를 부를 가능성을 지적받기도 했다(이런 점에서 본다면 사업팀에서 다루고자하는 노동공간이라는 개념과 필자의 연구에서 정의한 노동공간은 개념적으로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물리적인 규모 차원에서 후자가 좀더 넓은 범위에 해당한다).
연구사업을 통한 ‘노동공간’ 개념화의 의의
따라서 ‘사업장/작업장’이 아니라 그 속의 ‘노동공간’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문제를 다루려고 한다면 그렇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와 설명 및 정당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학계에서는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는 ‘노동공간’에 대한 적극적인 재개념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 사업에서 진행하는 연구를 통해 그러한 작업이 유의미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작업장’이 단순히 노동자가 일하는 물리적 공간을 의미한다면, ‘노동공간’은 그러한 차원을 넘어 노동하는 자의 일상생활과 사회적 관계가 구성되고, 노동자의 공간이용 역량이 구체적으로 구성되는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정의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노동공간이 아니라 다른 용어로 대체해서 설명할 때 대부분의 논의는 제한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 듯하다. 전술했던 ‘작업장/사업장’이라는 용어로 대체해서 설명할 경우에는 (사업설명서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개별 작업장의 열악한 환경이 얼마나 큰 문제이고 이를 어떤 지원을 통해 보완해야 하는지의 문제로 귀결되기 쉽다. 좀더 큰 범위에 해당하는 ‘노동환경’이라는 일반적 용어로 대체할 경우에는 노동자의 신체/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공간의 특성과, 해당 공간에 부여되는 힘/권력의 문제가 잘 부각되지 않는다. 필자가 수행했던 반월공단의 사례에서도, 월담노조의 활동가 선생님들이 고민하셨던 것은 어떻게 작은사업장 내 노동의 공간이 특정한 방식으로 통제를 따라서 구성되고, 그러한 공간의 통제가 노동자들의 신체와 일상적인 삶, 내가 노동하는 자로서 누릴 수 있고 누려야 하는 ‘권리’라는 것 자체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바꾸고 제한하는지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다. 월담이 노조로 출범하기 훨씬 전에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노동자 개인의 ‘권리’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일상적인 권리모임의 형식으로 출발했던 것 역시 (실제로 노동자들이 물리적으로 연대할 시간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구체적으로는 이런 문제의식과도 연관되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아무래도 ‘활동’의 차원에서 이런 문제들을 의제화하는 방식은 실태조사 결과를 공론화하거나, 현재 관련 정책제도의 법적 한계를 지적하고 쉴 권리를 위한 휴게공간의 확보를 강조하는 등 활동의 현실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례가 많았다. ‘연구’가 할 수 있는 역할이란, 개별 작업장의 실태조사나 환경개선 요구의 차원을 넘어서 이러한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학술적/정치적 개념을 구성하고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에 노동공간 개념에 대한 이런 정의방식이 애초에 부재했기 때문에 사업팀에서 작업을 통해 노동공간을 적극적으로 개념화한다면 선행 사례로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때 노동자의 공간은 수동적인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노동하는 인간의 신체나 정신을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하고(노동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냐에 따라 그 자리에서 노동자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구성되고, 그런 방식으로 한 인간의 일상이 조건지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점에서 인간의 삶을 노동을 통해 공간적 차원에서 구성하는 핵심 개념으로 의미될 수 있다. 또한 노동공간이라는 개념 안에 해당 공간에서 노동자의 역할에 대한 권리를 자연히 포함할 수 있게 되며 장기적으로는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와도 연결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노동공간의 최저기준 마련에 대하여
연구팀의 다양한 주제 중 ‘노동공간의 최저기준’에 대해서는, 노동공간 인식 개선을 위한 담론의 형성도 필요하지만 특히 소규모 사업장의 입장에서 관련 법과 체계를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제도적 차원의 과제가 크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연구를 수행하면서 절실히 느꼈던 점은 작은 사업장이라 불리는 소규모 작업장들이 기본적으로 열악한 조건으로 인해 산재사고 등에 처할 확률이 다른 곳보다 높고, 임금, 노동시간, 사회보험, 안전보건관리 등 노동자의 권리에 관련된 모든 면에서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이다. 반월시화공단의 경우 제조업 분야 20인 미만 사업장이 87.5%에 이를 만큼 영세한 작은 사업장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등에서 준하는 휴게시설 설치 의무화 조항의 예외지대에 있었다. 휴식공간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공간 내에서, 작업하던 기계 옆에서 쉬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창문이 없는 탈의실을 쓰거나 그조차 여의치 않으면 밖으로 나가 공장 담벼락 등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답변했다. 사업주의 책임이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이지만 실제로 휴게실을 마련하기에 좁고 열악한 사업장들의 여건을 고려해서 노조가 제출했던 대안은 공공영역(공단 내 건물 또는 거리)에서 정부 주도사업으로 공용 휴게실을 마련하자는 방안이었고 이에 관련된 토론회가 작년에 개최된 바 있다. 이처럼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관리책임이 업장의 규모와 상관없이 동등하게 지켜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관련법을 들여다 본다면 물리적인 규모를 중심으로 책임의 경중이 결정되고 있음이 드러난다. 민주노총의 2020년도 보고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전국의 사업체들 중 5인 미만 업체의 비율은 97.9%에 달하여 전반적인 산업 및 노동생태계에서 1인 사업장 및 작업장의 비중이 결코 적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1인 작업장의 노동공간이라는 문제는 이처럼 관련 법이나 체계가 소규모 사업장들을 포괄하지 못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국가/정부/시 등이 주도하여 기본적인 노동자의 권리 충족을 위한 제도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제기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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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평 남짓 ‘유령 공간’ 속에서 조용히 저물어가는 황혼노동
남궁정노동도시연대 사무국장
2023년 8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으로 모든 사업장의 휴게시설 설치가 의무화되면서 그동안 퀴퀴한 지하실에 냉난방, 환기시설이 없는 것은 물론 물이 새거나 쥐가 나오는 등 열악한 실태로 익히 알려진 아파트경비원들의 쉬는 공간이 다시 한 번 주목받았습니다. 아직 바뀌어야 할 것은 많지만 최소한의 제도와 기준이 생겨 그나마 조금씩 개선될 여지가 생긴 게 다행이랄까요. 그렇지만 사실, 경비원들은 근무지인 아파트에서 마음 놓고 쉴 틈이 없습니다.
최근 아주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아파트경비원의 근무형태는 대부분 24시간 교대근무입니다. 경비 업무 외에도 주차게이트 관리나 외부차량 단속, 주변 청소와 분리수거, 우편물 및 택배 보관, 각종 민원 응대와 야간 순찰까지 마치면 법으로 정해진 식사나 취침시간도 보장받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그러다보니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당연히 우리가 ‘경비실’이라 부르는 업무공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곳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사실상 휴게공간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경비실에서 도시락이나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경비원들의 모습을 보신 적이 있으실 텐데요. 밤에는 그 안에서 그대로 잠을 청합니다.
그런데 이런 경비실에, 불과 몇 년 전까지 관리비용 절감을 이유로 폭염에도 에어컨 하나 없이 여름을 견디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2019년 서울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경비실의 절반 가까이가 이랬는데, 다행히 지자체 보조금 지원 등으로 형편이 많이 나아졌다지만 씁쓸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또 경비실 대부분은 개방된 장소에서 항상 입주민들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어, 부당한 시비나 ‘갑질’ 피해를 입기도 쉬운데요. 아파트는 집이고 누군가에게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휴식처이지만,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동자들이 수고하는 일터, 노동공간이기도 합니다. 경비원들이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없다면 자연히 주거환경도 악화될 것입니다.
지역 내 경비노동자 실태조사를 하며 다양한 형태의 경비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도대체 어떻게 여기 사람이 누울 수 있다는 거지?' 싶은 한 평이 채 안되는 정도의 좁은 바닥에, 밤에는 1.5m 길이 합판을 깔고 웅크려 잔다는 곳이었는데요. 주로 1980년대 이전에 지어진 복도식 아파트에, 동(棟) 출입구나 1층 복도 내부에 쪽문 형태로 한두 평 정도의 별도 공간을 경비실로 둔 곳에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박스 형태의 가설건축물을 세운 곳도 있고, 1990년대 이후 지어진 아파트들에선 단지 진입로에 벽돌이나 시멘트로 지은 경비초소를 볼 수 있습니다. 2000년대 후반 이후에 지어진 아파트부터 비로소 정문 주차게이트와 연결되어, 대리석으로 치장하거나 내부에 화장실과 탕비실을 갖춘 곳들이 눈에 띄고요. 최근에는 아예 지상에서 경비실이 보이지 않게 지어진 아파트들도 있습니다.
이런 변천사가 눈에 띄어도 변함없이 그대로인 부분이 있는데요. 조금 놀랍게도 최근 강화되는 휴게시설 관련 기준과는 다르게, 사람이 들어가 일하는 공간인 아파트 경비실의 설계기준은 아직 없습니다. 우선 국토교통부 「범죄예방 건축기준 고시」을 통해 ‘각 방향 조망이 가능하고 조경 등으로 시야를 차단하지 않으며, 취약지역을 살펴보는 CCTV 설치’ 등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을 두고 있고요. 「주택법」과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는 ‘부대시설’ 중 하나로 정의할 뿐, 관리사무소에 대한 것과 다르게 특별한 언급이 없습니다. 지자체 조례나 기준은 국토부 고시와 비슷한데 「서울시 건축물 심의기준」에도 효율적인 경비 업무를 위한 내용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법은 아니지만 공동주택 설계기준을 가장 상세하게 적어 참고가 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건축설계기준’에선 관리사무소나 숙직실, 방재실, 용역자 휴게공간에 대해 면적과 규격, 구획과 동선, 자재나 창호 등을 정하고 있으나 경비실은 그런 내용을 볼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경비실은 같은 아파트 안에서도 유독, 일하는 사람의 인격이나 노동 환경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지 않고 기능의 효율만을 중시하는 차가운 공간, 법과 기준을 만든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유령 공간’인 셈입니다.
아파트 경비원의 평균 연령은 70대 초반, 오늘도 이들의 황혼노동으로 우리의 평온한 일상이 지탱되고 있습니다. 근로복지공단 업무상 질병 판정에 따르면 2018년부터 3년간, 58명의 아파트 경비원이 만성 과로로 숨지고 170여명이 과로성 뇌심혈관계 질환을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대부분 고령임에도 잠이 부족한 24시간 격일제 근무가 주된 원인이지만 열악한 근무‧휴게공간도 악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충격적이게도 과로사한 장소의 80% 이상이 일하던 공간인데, 주로 1인 근무를 하다 보니 응급처치 등이 부족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얼마 전 자주 만나 뵈었던 한 아파트 경비원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서 세상 떠나야지, 라고 생각한다지만 이 나이돼도 계속 살고 싶어. 나는 살고 싶으니까 계속 일하는 거야” 노년의 생계와 존엄을 위해 경비실로 출근하는 이 분의 소망은 사실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수많은 동료 아파트 경비원들의 바람입니다. 더는 2평 남짓한 ‘유령 공간’에서 소리 없이 저물어가는 경비원이 없도록,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사회가 먼저 물어보고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필자 소개
강남‧서초 지역 시민단체 ‘노동도시연대’의 남궁정 사무국장은 동남권서울시노동자종합지원센터와 함께 2021년 서초구, 2023년 강남구에서 ‘아파트경비노동자 근로실태조사’를 기획‧진행하였고, 아파트 경비노동자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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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속’이 필요한 우리의 일터 공간
김직수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오늘날 우리는 복합적 위기 속에 살고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마주한 보건위기, 점점 심해져가는 이상기후를 맞닥뜨리며 겪고 있는 기후위기, 곳곳에서 확대되고 있는 전쟁의 위협,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불평등의 심화를 낳고 있는 경제위기 등이 얽히고설키며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급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은 공적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조직된 공공서비스의 강화를 통해 모든 사람들의 기본적 필요와 보편적 권리를 보장해 가는 것, 즉 사회공공성 강화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공공성의 이상은 주로 제도적인 영역을 대상으로 사고되어 왔지만, 우리의 일상과 비일상을 규정하는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공간에 대해서도 적용되어 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공적 공간의 확보’를 중요한 이상으로 삼아 왔다. 물론, 공적 공간의 ‘공공성’ 자체는 그 기준이 애매하기도 하고, 또 여성이나 사회적 소수자 등에 대해 여전히 배타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안적 공간을 사고함에 있어 공적 공간의 확보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공적 공간, 다시 말해 공간의 공공성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을까? 공간의 공공성은 공간의 사적 전유라는 배제에 대항함으로써 확보될 수 있다. 이러한 배제는 다양한 형식을 띤다. 최근 한국에서도 큰 인기와 반향을 얻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은 폐허를 내버려 두면 재해의 온상이 된다는 공간적 알레고리를 제공한다. 주인공들의 '문단속'이라는 행위는 버려진 공간의 복구라는, 공간적 배제에 대항하는 실천이기도 하다. 스즈메가 순례하는 차량기지, 폐교, 놀이공원, 온천마을과 같은 공간들은 주로 사회경제적 이용가치가 낮아져 주변화된 공간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우리가 겪는 공간적 배제는 ‘주변화’ 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람들만을 걸러내는 ‘필터링’, 물리적·상징적 방해물 설치를 통해 잠재적 공간이용자를 배제하는 ‘요새화’, 특정 목적 이외의 공간이용을 가려내기 위한 ‘감시’, 지불능력을 지닌 이들에게만 공간을 개방하는 ‘상업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대규모 재해라는 맥락을 제외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공간적 배제가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여전히 일터인 듯하다. 일터와 생활공간의 분리부터가 주거문제와 성별분업 등의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으며, 일터 내에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초과착취와 사회적 배제를 겪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을 드러내고 해결한다는 의미에서 ‘문단속’을 필요로 하는 일터의 현실을 노동시장 내 대표적인 하층 노동자들인 청소, 경비,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사례를 살펴보자. 오늘날 우리들의 일과 삶의 공간인 도시공간은 건물들로 가득 차 있다. 대부분의 일터가 자본에 의해 소유되고 통제되는 지극히 사유화된 공간인 것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경우 도시공간을 가득 채운 건물들은 오늘날 아이들의 꿈인 '건물주'에 의해 소유되고 통제된다. 그리고 이 건물들을 깨끗하고 쾌적하고 안전하게 유지하는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이곳은 일터이기도 하다.
청소, 경비, 시설 노동자들은 여전히 대다수가 비정규직으로, 최근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실질임금 상승이 이루어졌다 해도 여전히 저임금노동이라는 낙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임금의 원인은 여전히 중간착취인데, 간접고용 형태 하에서 용역업체의 간접비, 즉 일반관리비, 회사 이윤, 부가가치세 등을 공제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낮은 임금수준이 발생하게 된다. 물론 과거와 같이 사회보험으로부터도 배제당하는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럽지만, 각종 수당과 복지혜택이 거의 없다는 점도 여전하다. 대부분이 고령자인 동시에 특히 청소노동자들은 대다수가 여성으로, 이들은 성희롱을 비롯한 직장내 괴롭힘에도 노출되어 있다.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한 괴롭힘 또한 적지 않다고 한다.
한편, 도시 건물 내에는 이용자들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대부분의 경우 구내 곳곳에 촘촘하게 CCTV가 설치되어 있다. 이는 보안상의 이유로 설치된 것이지만, 원청 또는 용역업체 측이 마음만 먹으면 노동통제 목적으로 청소, 경비,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예컨대 개별 노동자들의 작업 위치나 업무 수행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복도나 실내 등의 청결상태 등의 확인을 통해 노동자들의 노동밀도를 급격하게 높일 수 있다. 공간적 주변화도 심각하다. 휴게공간은 비좁고 씻을 곳도 없고 제대로 비품이 갖추어지지 않는 등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적정한 크기의 휴게공간이 제공되지 않거나 지하실, 기계실 옆과 같이 휴게공간으로 사용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곳에 위치하여, 악취, 소음 등에 노출된 경우도 있다.
그밖에도 청소, 경비,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다양한 위험요인들을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다. 청소노동자에게 가장 빈발하는 재해는 미끄러짐이며, 그 외에도 먼지, 분진, 가스 등에 의한 오염, 무거운 물건 취급, 불편한 작업 자세 등이 원인이 되어 업무상 사고를 당하거나 직업병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시설관리 노동자의 경우 고압전류, 유해물질 등에 노출되는 일이 적지 않고, 경비직의 경우 드물게 발생하기는 하지만 화재라든가 범죄자의 폭력 위협 등에도 노출될 수 있다. 이처럼 일터에서 가장 심각한 공간적 배제는 노동자의 신체라는 공간이 버려지는 것, 다시 말해 노동재해이다. 이러한 일터에서의 배제에 대항하면서 노동 공간의 공공성을 확보해 나아가는 ‘문단속’의 실마리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공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물론 최근 연세대와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비난에서 드러나듯 노동자들이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혐오도 발생하고 있지만, 이에 맞서 그들을 지지하고 또 우리의 일터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문단속’의 첫걸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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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노동인권으로서 이동노동자 휴게공간에 대한 단상
박종식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몇 년전 환경미화원들의 근무환경 개선 연구과제를 진행하면서 저녁부터 새벽까지 따라다녔던 적이 있다. 단독주택가를 배회하면서 각 가정에서 배출한 종량제 봉투들을 청소차량에 쉼없이 던져 올리는 일은 매우 고되면서, 동시에 쓰레기에 포함된 깨진 유리 등에 의한 부상의 위험도 매우 큰 작업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새벽이 되자, 땀 흘린 걸 보충할 겸 잠시 물을 마시고는 편의점에서 받은 박스를 길가에 깔고 누워서 그대로 20여 분을 쉬었다. 당시 8월 말이어서 춥지는 않았지만, 겨울에는 어떻게 쉬는지 여쭤보니 입구가 열린 건물이나 빌라가 있으면 찬바람을 피해 잠시 안에 들어가서 마찬가지로 박스를 깔고 쉰다고 했다. 환경미화원들의 회사 사무실에 휴게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일하다가 사무실로 돌아가서 쉬는 것이 불편하고, 게다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청소일을 마쳐야 해서 사무실에 가서 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 인터뷰를 하면서 환경미화원들에게 ‘거리’에서의 노동과 휴식은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거리에서 일하고 쉬는 이들은 비단 환경미화원 뿐만 아니다. 음식배달원, 택배기사, 대리기사, 각종 제품의 AS기사 등은 환경미화원처럼 ‘거리’ 자체가 업무공간은 아니지만, 정해진 일터가 없이 거리를 쉼없이 돌아다닌다는 점에서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거리의 의미와는 다를 것이다. 이렇게 일하는 이들을 최근에는 ‘이동노동자’라고 부르고 있다. 이동노동자들은 안전하게 일할 권리로서 편하게 쉴 수 있는 권리도 중요하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28조의2 (휴게시설의 설치) 1항에서 “사업주는 근로자가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추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제96조의2에 근거하여 23년 8월 18일부터는 휴게시설 설치가 의무화되었다. 이 법은 거리 환경미화원과 배달원 등에게도 적용된다. 또한 ‘공동휴게시설은 각 사업장에서 휴게시설까지의 왕복 이동에 걸리는 시간이 휴식시간의 20%를 넘지 않는 곳에 있어야 한다.’고 휴게시설의 위치까지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환경미화원의 사례와 같이 사무실에 휴게공간이 있더라도 거리에서 일하다가 다녀오기 쉽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노동자들은 업무관련 안전과 보건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이동노동자들은 산업안전보건교육을 받기도 쉽지 않다.
이동하는 노동자들의 휴게공간 확보를 위해서 몇 년전부터는 공공영역에서 나서고 있다. 서울시를 필두로 전국의 기초 및 광역지자체들은 도시 내 주요 거점 지역에 이동노동자쉼터를 (위탁) 운영하고 있다. 이동쉼터는 주로 대리기사나 퀵서비스 배달원, 돌봄종사자, 학습지교사 등이 이용을 하는데,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도심 한복판에 주로 있다. 이러다 보니 이동노동자들 중 이용자가 일정한 제약이 있고, 또한 쉼터의 보안과 인력확보 문제로 운영시간이 제한적이다.
거리는 누군가가 독점할 수 없는 공적인 공간이다. 이러한 점에서 거리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공간으로 다가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거리가 업무공간인 환경미화원과 이동노동자들에게 거리는 어떠한 의미일까? 대부분 홀로 일하는 이동노동자들에게 거리가 환경미화원의 사례처럼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의 박스’로 인식되기보다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공간으로 인식되었으면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동노동자들에게 부족한 ‘거리의 안전과 환경’에 대한 산업안전보건교육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노동자가 언제든 편하게 쉴 수 있는 거리는 시민 또한 편하게 쉴 수 있는 거리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동자들에게도 편안한 거리, 노동인권이 구현되는 거리에 대한 구상이 앞으로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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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노동공간의 의미: 새벽 길 위의 배달노동자
이승윤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사회정책학 교수
우리가 잠든 도시, 새벽 공기 속에서 발걸음을 재촉하는 새벽배달노동자가 있다.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새벽배달노동자들의 노동공간인 새벽 도로 위의 안전은 그들의 삶의 질을 반영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새벽배달노동의 존재와 역할은 바쁜 도시의 풍경과 기술발전의 화려함에서 도시인의 삶의 일부분으로 확대되었지만, 그 뒤에 숨겨진 이들의 노동환경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새벽배송은 택배업계에 혁신을 가져왔다. 당일 배송이 가능해진 것은 기술 발전과 소비자의 변화된 필요에 의한 결과다. 그러나 이런 서비스 제공의 뒷면에는 숨겨진 노동자들의 희생이 존재한다. 우리의 편의와 효율을 추구하는 새벽 배송 서비스는, 그들에게 높은 업무 강도와 건강 위험을 가져다주고 있다. 새벽배송노동자들의 하루 배송량은 몇 년 사이에 거의 4배가 넘게 증가했다 (김태환, 이승윤, 박종식 2021). 하지만 많은 노동자는 휴식 없이 계속해서 일하는 경우가 많고 노동 환경이나 처우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택배노동자들의 일반적인 고용형태, 즉 임금 근로자로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새로운 형태의 자영업자로서 복잡한 계약 체계 속에서 일하고 있다. 임금노동자와 같이 종속성을 보이면서도 실질적인 위험에 노출되면, 결국은 자영업자로 스스로 위험을 부담하게 된다. 특히, 노동을 중개하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이 보이지 않은 통제를 오히려 강화해왔다.
새벽배달노동자들 중에서도 고용관계를 맺은 임금노동자의 근무시간은 대체로 오후 9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7시 30분까지로 설정되어 있다. 그들은 주 5일 근무하여 하루 9시간, 주당 45시간 동안 노동한다. 물류센터에서 출발하여 방대한 양의 배송물품을 오전 7시까지 배송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편, 종속적 자영업자의 지위로 일하는 이들은 오전 12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주 5일 동안, 주당 50시간의 노동을 수행하였다. 앱에 접속하여 약관동의 이후 바로 노동을 시작하는 긱노동자는 하루하루 일감을 받는다. 이와 같은 긱노동 형태의 새벽배달노동자는 임시적이고 일정하지 않은 일감을 맞이하며 노동패턴의 불규칙성을 경험한다. 새벽배달 긱노동자 중 일부는 추가 노동도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식사나 휴식 없이 끊임없이 움직이는데, 이들의 고충 중 하나는 ‘합적’ 업무로, 상품의 파손이나 신선도를 위해 상품을 재배치하는 과정이 배달업무 외에도 추가된다. 일부는 고용관계를 맺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의 새벽배달노동자가 처리하지 못한 추가 물량을 새벽배송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물량의 변동과 일방적인 보수 조정, 미리 알 수 없는 배정 취소로 인한 시간의 낭비는 그들의 삶의 질을 더 떨어트린다.
이러한 노동패턴을 바라보며, 도시에서 함께 살고 있는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새벽의 도시라는 노동공간이 정말로 이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일하기에 적합한가?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욕구와 사회적 관계를 충족시키는 시공간이 무엇인지, 그리고 새벽배달노동자가 경험하는 공간이 같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새벽노동의 가장 큰 부담은 불규칙한 생활패턴으로 인한 건강 문제다. 면접조사 결과로 본 그들의 일상은 생체리듬의 깨짐, 수면장애, 소화불량이라는 다중적 건강위험에 짓눌려 있었다. 불충분한 주간 수면으로 인한 몸의 변화와 증상은 새벽노동에도 다시 부정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눈에 보이는 체중 감소와 얼굴 홍조는 그저 문제의 첨미일 뿐, 실제로 그들은 배송 도중의 졸음운전, 접촉사고와 같은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어두운 새벽배송 환경만큼이나, 긱 노동자들의 보험에서의 배제와 '승용차용 화물 유상운송특약'의 낮은 가입률은 그들의 불안정한 삶을 대변한다. 인간적인 관계 역시 그들의 어려움 중 하나다. 새벽에 일하고, 주간 시간에는 수면을 해야 하는 이들은 주변 지인과의 만남이 줄어들고, 가족과의 리듬 차이로 인해 발생한 갈등으로 인해 정서적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새벽배달노동자들의 처우와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생각해보자. 첫째, 현재 근로기준법 상에서 야간근로자의 정의가 불분명하며, 간접적인 방식의 규제만 존재하기 때문에 기업들의 경쟁 속에서 새벽노동이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야간과 새벽노동에 대한 규정이 더욱 구체화되어야 한다. 야간노동의 정확한 시간 범위와 함께, 총 근로시간이나 야간노동 비율 등에 대한 규정도 포함되어야 한다. 노동강도를 완화하고, 보상휴가와 같은 조치 그리고 건강에 위험을 주는 새벽노동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종속적 자영업자는 대형마트의 업무 지침을 따라 일하면서도 연장수당이나 휴일근무수당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다중 하청 구조로 인해 협상력이 없으며, 노동조합 같은 대표 기구도 부재하다. 이로 인해, 새벽배달노동자들은 다양한 위험요인에 직면하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들 노동자를 대표할 수 있는 노동조합과 같은 단체 결성이 필요하며, 단체 협약을 위한 권리가 법적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장기적으로 종속적 자영업자와 긱노동자의 노동자성이 인정되어 노동자를 위한 법적 보호의 테두리 안에 이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다양한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수정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자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위험이 개인화되면서 여러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모습이 보여 구체적인 법제도은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교통사고 위험은 더욱 높은 편인데 포괄적인 산재보험의 적용 확대가 시급하다.
새벽 거리 위의 새벽배달노동자들의 노동은 우리 도시의 중요한 부분이다. 새벽배달노동자들의 노동 뒤에 숨겨진 이야기는 우리가 직면해야 할,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공간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사회적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모든 활동이 우리 모두의 삶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의 구성원인 새벽배달노동자의 삶과 노동환경에 대해 우리에게는 공동의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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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는 이들의 공동체
박수민연세대학교 사회학과 BK21 교육연구단 박사후연구원
‘오토바이 출입금지.’ 최근 생긴 대규모 아파트 단지 중에는 배달 오토바이가 지상으로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아예 단지 출입 자체를 금지하는 곳들이 있다. 이런 아파트들은 대체로 지상공간을 공원처럼 만들어 두었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주민들은 벤치 곳곳에 앉아 있다. 너무나도 쾌적한 공간이지만 배달을 하러 가는 사람 입장에선 참 난감하다. 이 쾌적한 공간으로 일을 하러 가는 것은 훨씬 어렵고, 위험하며, 이에 대한 보상도 없기 때문이다.
지하주차장의 경우, 특히 물기라도 있으면, 바닥이 매우 미끄러워 오토바이가 넘어지기 쉽고, 무엇보다도 배달시간이 몇 배로 걸린다. 지하 주차장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아파트의 경우 주차장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어려움에 대해서 그 누구도 보상을 하지 않는다. 비오는 날, 아파트에서 요구하는 대로 지하주차장으로 갔는데, 주차장 바닥이 물기가 흥건해서 그만 넘어지고 말았고, 그 결과 오토바이도 깨지고 발목도 다쳤다면 누구에게 보상을 요구할 수 있을까.
출입금지 문제를 비롯해 배달노동자가 겪는 문제들 중에는 공간의 이용과 관련한 사안들이 많다. 이동노동이란 결국 다른 사람들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에 방문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도록 하거나, 화장실 사용을 못하게 막는 경우도 있다. 폭서기, 혹한기에 야외에서 대기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무자비한 날씨에서 대피해 쉴 수 있는 휴게공간의 확보는 최근 정책적으로도 주목받는 이슈이다. 일련의 사례들은 이동노동자들이 안전하고 효율적인 노동공간을 확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 그리고 노동공간을 확보하지 못했을 때 일터에서의 존엄도 위태로워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흔히들 배달노동자와 같은 이동노동자들에게는 일터가 없다고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이 말은 반만 맞다. 움직이며 일하는 곳이 일터라면 도로, 상가, 아파트 모두가 일터이다. 배달노동자에게 없는 것은 일터가 아니라 일하는 공간에 대한 권리이다.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에서 저자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환대를 통해 사회의 성원으로서 인정받고 자신의 자리를 얻게 되며, 이 자리는 법적 권리, 더 나아가 사람됨의 토대”1)라고 말한다. 공간에 대한 요구는 성원권에 대한 요구인 것이다. 시장-제도적 지위도 보장되지 않고, 정주공간에 소속되지도 못하는 ‘계속 이동’하는 이들에게는 어떠한 종류의 성원권이 가능한 걸까.
몇 년 전 큰 사고가 나서 오픈채팅방을 비롯한 배달노동자 커뮤니티가 모두 비탄에 젖은 적이 있다. 사고의 현장이 너무나 참혹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 때문에 며칠간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 오픈채팅방에서는 누구에게든 참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공감과 애도와 더불어 사고를 당한 이에게 옷을 덮어 준 행인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목소리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동은 사고 장소 근처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방문하는 곳으로 이어졌다. 한 곳에 모여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도로를 점유하는 이들 중에는 노동자도 있다는 것을, 도로가 누군가에게는 노동의 장소임을 환기시켜 주었다.그곳에 방문한 이들, 추모현장의 사진을 본 노동자들은 운전을 하면서 겪는 위태로움의 감각, 위험을 감수하는 배경에 대한 공감을 공유하는 동료의 존재와 그들의 일터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회과학 연구에서 모빌리티(mobility)는 여러 뜻을 가진다. 이동노동자들의 경우와 같이 이동 그 자체를 의미할 때도 있고, 나라와 대륙을 이동하는 이주의 맥락에서 쓰이기도 하고, 불평등과 관련한 맥락에서는 사회적 계층이동을 뜻하기도 한다. 모두 다른 맥락에서 쓰이지만 계층이동, 거주지의 이동, 공간의 이동은 현대사회의 보편적인 특징이다. 경제 상황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원치 않은 여러 차원의 이동을 강제당하는 위험은 시장경제에서 취약한 위치에 놓인 이들이 공유하게 되는 감각이기도 하다. 나는 정주민이 아닌 이동하는 이들을 환대할 수 있는 공동체는 바로 이런 위태로움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아닐까 한다. 그 위태로움을 서로 알아봐주는 것이 지나가는 이들에게도 자리를 내어주는 기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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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그 소외 공간에도 희망은 있다
정일수강동구 해뜨는주유소
몇 년 전 재정 위기가 닥쳤다. 뒤늦게 시작한 대학원 공부가 위기의 원인이라면 원인이었다. 경제적 지원도 없이 6년 동안 오로지 학문에 매진했으니 이 위기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지금도 그 선택에 후회는 없다. 대학원 공부를 통해 화폐가치로 온전히 환산될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1인 가구’라는 인생 타이틀도 추가로 획득했다. 전공과 무관한 일을 선택한 데에는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해봤던 일은 피하는 것, 그것이 반평생 알바인생의 철학이라면 철학이었다. 나의 주유소 출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첫 근무지는 지하철 1호선 신설동역 근처에 위치한 주유소였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주유소 공간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단순한 노동인 데다가 취업 조건도 까다롭지 않으니 많은 이들이 쉽게 왔다 쉽게 떠났다. 주유소에서 만난 이들 각각의 인생 스펙트럼은 또한 다양했다. 고등학생부터 칠십이 넘으신 어르신까지 연령 범주 또한 넓었다. 가장 짧게 만나 본 사람은 2시간 정도였다. 그는 고객이 현금으로 결제할 때 잔돈 계산이 안 될 정도로 숫자 지능이 부족한 젊은이였다. 너무 짧게 만났던 터라 지금은 선하기만 했던 그의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나의 기억 속에 생생한 이들을 이제부터 떠올려 보려 한다. K는 중학교 때부터 사이클 선수 생활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친 후, 선수의 꿈을 포기하고 방황하다가 주유소에 왔다. 쉬는 날이면, 그는 선수 복장을 하고서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늦은 밤에 돌아왔다. 이십 대 초반이었던 그는 나와 술 한잔을 할 때마다 무작정 반말하는 아저씨 고객들이 싫다고 하소연하곤 했다.
J는 스물다섯 살에 아이 아빠가 된 가장이었다. 오토바이 배달 일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얼굴을 다치고 한쪽 시력까지 나빠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주유소로 왔다. 가장답게 성실하게 일했던 그는 월급날이 되면, 다른 직원들에게 술 한 잔 얻어먹기 바빴다. 왜냐하면 급여에서 담배 값과 생활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돈이 아이 엄마 통장으로 빨려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와 술을 자주 마셨던 것 같다.
P는 내가 취직한 주유소 소장이었다. 그와 나는 동갑내기였다. 초반에는 서먹했으나, 술 한 잔 마시며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는 특전사 간부로 전역했다. 군대 시절 대테러 작전 사격 훈련 부작용으로 이명증(耳鳴症)을 얻은 P는 항상 이어폰을 끼고 살았다. 그는 하루도 술 없이는 잠들 수가 없었다. 근무 간에 업무를 지시하거나 부탁할 때도 그는 항상 목소리가 컸다. 직원들이 그의 큰 목소리 때문에 오해하거나 상처받는 일도 자주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의 장애를 조용히 설명해 주곤 했다. 사람을 두고 판단할 때, 언제나 신중해야 하는 법임을 그를 통해 새삼 되새기곤 했다.
B는 중국에서 가죽 공장을 운영하다가 중국 교포에게 사기를 당한 후 부인과 함께 야반도주하여 간신히 한국에 돌아왔다. 낮에는 작은 사무실을 운영했는데 주로 배달을 했고, 저녁에는 주유소에서 근무했다. 신용불량자라는 사회적 신분 탓에 모든 명의는 아내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고 했다. 그의 유일한 사치는 퇴근 후 집 앞에서 아내와 막걸리를 마시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인연 가운데 B는 보기 드문 진정한 애주(愛酒)가였다.
H는 고등학교 때 뺑소니 사고로 다리를 다친 후 다른 일을 할 수 없어서 주유소에 들어왔다. 인천에서 온 그는 매사가 낙천적이었으며 주유소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퇴근 후 항상 혼자 절룩거리면서 종로 일대를 누비며 돌아다니곤 했다. 하루는 그를 따라나선 적이 있었다. 그는 냉면 맛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H는 나와 마주 앉아 냉면을 먹으면서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는 이내 휴대폰 게임에 몰두했다. 두 성인 남자가 음식을 먹으며 별다른 말 없이도 한참을 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와 마주 앉은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일관되고 강한 삶의 의지만큼은 나를 압도했다.
pG는 12년 동안 커피숍을 운영하다가 코로나 여파로 문을 닫아야 했다. 잠시 쉴 틈도 없이 그는 무작정 주유소로 왔다. 아픈 아내의 병원비 때문에 하루도 쉴 수가 없다고 했다. 내성적이면서도 선한 인품을 지닌 그는 고객과 아무런 마찰도 일으키지 않으며 무척 성실하게 일했다. 여러모로 본받을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커피에 대한 다양한 지식 또한 그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G는 커피 사업을 운영하면서도 커피 지식과 기술 향상을 위해 국내 유명한 바리스타들을 찾아가 끊임없이 사사(師事) 받았다. 무척이나 너그럽고 인자해 보였던 그도 커피 맛과 커피 지식에 대해서만큼은 까다롭게 굴었다. 지금도 나는 그가 커피 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S는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그만두고 주유소에 들어왔다. 그녀의 꿈은 헤어디자이너 자격증을 취득한 후 열심히 일해서 자신의 헤어숍을 운영하는 것이다. S는 주유소일이 처음인 내가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틈틈이 다가와 업무를 알려주곤 했다. 그때 그 고마움을 그녀에게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내게는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S는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엄마에게 멋진 외제차를 선물할거라고 말하곤 했다. 그녀의 목소리 톤은 마치 내게 자신의 다짐에 증언자가 되어 달라는 듯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꿈과 이상을 향해 꾸준히 헤쳐나아가고 있을 거라 믿는다. 정신없이 일하던 어느 화창한 날, S가 내게 지나듯 건넨 말 한 마디가 아직도 나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삼촌! 삼촌 일하는 모습 보고 있으면 꼭 AI 같아요. 저 하늘 위 노을 좀 보세요. 낭만이 없어 삼촌은!”
S는 내게 이 말을 무심코 던졌던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열일곱 살 소녀가 건넨 그 한마디는 오랜 시간 현실 부정으로 얼어붙었던 나의 심연(深淵)에 강렬한 파문을 일으켰다. 나름 견고했던 현실부정 태도에 균열을 낸 것이다. 이처럼 주유소에서 마주친 많은 이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각각의 인생 서사를 알게 되면서 나약해진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학문적 풍토에 길들여진 나의 의식에도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도시 공간에 그어진 ‘차이’가 아닌 ‘차별’의 경계도 인식할 수 있었다. 직업에 귀천(貴賤)은 없었다. 천박한 사회적 시선과 무지로 인한 오해만 존재할 뿐이다.
지난 5년 동안 주유소 근무를 통해 내게 이전에 없었던 한 가지 감각이 예리하게 다듬어졌다. 그것은 바로 고객의 말투, 목소리, 표정에서 그/그녀가 나를 대하는 분위기를 거의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타인에 대하여 이토록 예민해진 이유는 일부 고객들의 멸시와 무시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가 업무에 무지한 탓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일방적인 무시를 무작정 당하고 있기엔 나는 그리 너그러운 인간이 아니었다.
주유소 기계 시스템 구조와 작동 원리를 부지런히 익혀갔다. 안전물 관리자 교육을 이수한 후 주유소 관리자 자격증도 획득했다. 그래도 일부 고객의 차별적 시선은 멈출 줄 몰랐다. 고민 끝에 나는 그러한 천박한 시선이 주유소라는 공간에 대한 어떤 사회적 혹은 집단적 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주유소(注油所), 이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릴 때면 나는 영화 <브로커 Broker>(2022)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이 영화는 일본의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감독을 맡았고,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주영, 그리고 아이유가 출현한 작품이다. 영화에서 주유소 공간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 러닝타임 129분 가운데 주유소 장면은 단 59초다. 이 장면이 내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현재 나의 근무지가 시공간적으로 교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영(아이유)은 과거 성매매로 임신한 아이를 버린 미혼모이자 아이의 아빠를 살해한 인물이다. 영화 결말에 이르러 죄가 밝혀지고 소영은 징역 처벌을 받는다. 출소 후 그녀는 주유소에서 일을 시작한다. 감독은 소영의 삶에 변화가 있었음을 암시할 목적으로 주유소를 선택한 듯하다. 하지만 이 장면이 내게는 불편하게 다가왔다. 왜 주유소인가? 소영이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공간을 주유소로 설정한 것에 어느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저 우문(愚問)이라 치부할지도 모른다.
영화 속 주유소 장면은 내게 복합적인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감독은 주유소를 범죄 이력을 가진 소영이 새 삶을 시작하는 공간으로 제시한다. 관객은 주유소 직원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소영의 모습을 통해 모종의 정화(淨化) 작용을 체감한다. 시대적 반영(reflection)으로서 예술 작품의 역할은 사회적으로 이미 충분히 논의된 바 있다. 하지만 그 이미지가 생성하는 의미작용(signification)이 작가의 의도에 충분히 이바지할 수 있는가? 의미작용에서 파생될 수 있는 다양한 시선은 다른 차원에서 또 다른 사회적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러니까 예술 작품은 단순히 ‘현실 반영’ 차원에서만 소비되어선 안 된다.
미디어가 생산하는 주유소 공간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떤 이미지로 소환되는가? 내가 주유소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5년 전 주유소는 은퇴자, 신용불량자, 장애인, 중졸 및 고졸 학력자 등등 대체로 사회적으로 소외된 취약 계층이 일하는 공간이었다. 적어도 내가 영화 <브로커>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제 나의 뇌리에는 ‘전과자’라는 다른 하나의 이미지가 추가되었다. 내가 일하는 동안 만난 사람들 역시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을 열정적이고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었다. 그 점에서 그들은 여느 노동자와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면, 주유소라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점유하는 주체들을 사회적으로 소외시키는 주체는 누구인가? 소위 ‘다를 바 없는’ 노동자 자신들인가? 시대 반영, 혹은 현실 반영을 핑계 삼는 예술가들인가? 진실탐사를 명분으로 내세우는 언론인가? 더 나아가, 도시의 소외 공간과 소외 계층을 대상화하는 것이 윤리적으로는 타당한 일인가? 이는 단순히 답을 요구하는 질문일 수 없다.